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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Tel. 02 747 1367, 010 7371 1871 |Fax. 02 747 1877 | E-mail. ssaangin@hanmail.net
한혜영의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 시집은 제목처럼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삶의 파편을 교리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세상 시계는 리셋되었다」는 고백(「삶의 리셋」)을 통해, 인간이 견디는 소모되고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은총이 파고드는 구원의 때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는 결단의 순간을 기록한다. 이 책의 중심축은 바로 그 시간의 변환, 즉 심장 박동 소리에 초침을 맞추려는(「두 가지 시간」) 내적 전환의 신앙고백이다. 「양철지붕 위의 욕망」은 높이와 열기의 이미지로 신앙과 욕망의 모순을 드러낸다. 달궈진 철판에서 십자가조차 올려다볼 여유가 없는 상태는, 신앙의 시선을 빼앗는 ‘고도高度의 유혹’을 상징한다. 시인은 내려오라 재촉하는 사설의 음성과, 내려갈 생각조차 없는 자기 고집 사이에서 서성인다. 이때 시가 제시하는 길은 ‘승리의 감정’이 아니라 ‘체온의 윤리’다. 발바닥의 통증으로 환기되는 감각의 각성이야말로, 추상적 신념을 구체적 삶으로 접속시키는 카이로스의 입구라는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기복 신앙을 단호히 거부한다. 「복을 구하는 자들」은 그 비판을 가장 간명하게 말한다.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도… 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 즉 욕망 충족의 중독을 탈각하지 못하면, 신앙은 ‘요술지갑’으로 환원된다. 한혜영은 복을 “하나님 말씀 안에 둥지를 짓고 사는 하루”라는 생활의 규범으로 재정의한다. 같은 맥락에서 「가시나무 세상을 사는 법」은 가시덤불 속 둥지를 트는 새의 은유로, 고난을 회피가 아닌 보호와 성장의 환경으로 재해석한다. 고통의 자리야말로 ‘알을 품는’ 장소인 생명의 준비실이며, 신앙은 그곳에서 “천국까지 훨훨” 비상할 날개를 얻는다. 이 책은 또한 의심과 믿음의 진자운동을 숨기지 않는다. 「경계인의 고백」의 화자는 「달아날 틈을 엿보는 기회주의자」의 자화상을 내놓고, 예배의 시공을 채우는 대신 「헛되거나 나쁜 생각」에 미끄러지는 습속을 고백한다. 이어 「입장 바꿔 보기 1」은 베드로의 서사를 끌어와, 배반 이후의 통곡을 먼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자리’로 재배치한다. 이 전환은 윤리적 죄책감의 과시가 아니라, 의심에서 믿음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여는 신앙교육의 언어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구체적 훈련, 곧 카이로스의 문턱을 통과하는 연습이 시의 정서와 신학을 함께 단단히 만든다. 「거룩한 소수」가 그려내는 겨울 나목의 이미지는 이 신학적 미학을 공동체 차원으로 확장한다. “바알에게 꿇지 않은 무릎”이라는 비전은 ‘다수의 열광’보다 ‘남은 자의 인내’에 가치를 둔다. 신앙을 대중성의 잣대로 계량하지 않고, 눈보라 속에서도 “파란 새순”을 틔우는 느린 시간에 의지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욕망의 다수를 떠나 거룩한 소수로 사는 법이다. 이 시집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은 신앙을 윤리적 결심으로만 강요하지 않는다. 양철지붕의 열기, 가시덤불의 통증, 민들레씨의 가벼움처럼 흔들리고 미끄러지는 감각들 속에서, 시인은 신앙을 기복의 욕망에서 건져 올려 삶의 지혜와 실천으로 다듬는다. 크로노스의 소모를 카이로스의 결단으로 환승시키는 이 진솔한 시편들은, 의심을 징계하기보다 길들이고, 다수의 열광보다 소수의 인내를 택하며, ‘복’의 허상을 걷어내고 ‘복된 하루’를 찾고 가꾸는 언어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믿음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작은 기도서에 가깝다. [작가의 해설 중에서] 나는 이제 크로노스 시간을 카이로스 시간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양철지붕 위를 기어오르던 욕망의 발목을 스스로 낚아챌 것입니다. 욕망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는 것을 믿으며 한층 홀가분한 마음으로 ‘삶의 리셋’을 선언했습니다. “예수의/목숨 값으로 받은/그 소중한 시계를/심장에 간직하고도/형편없는/삶을 기록했”던, 이런 탕자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버지, 거기 계셔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다는 인사가 절로 나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아버지는 나에게 희망이고 구원이시니까요. _한혜영
[저자 약력] 한혜영 충남 서산에서 출생. 1989년 아동문학연구 동시조 당선. 1994년 현대시학 시 추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8년 《계몽아동문학상》 소년소설 당선. 출간한 책으로는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 『올랜도 간다』 『검정사과농장』 『맨드라미 붉은 마당을 맨발로』가 있고, 신앙고백 시집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 동시집으로는 『닭장 옆 탱자나무』 『큰소리 뻥뻥』 『개미도 파출소가 필요해』 『치과로 간 빨래집게』가 있습니다. 그 외 시조집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 장편소설 『된장 끓이는 여자』. 장편동화 『날마다 택시 타는 아이』 『뿔 난 쥐』 『영웅 소방관』 외 다수의 책이 있습니다.
미주문학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동주해외작가상, 해외풀꽃시인상, 선경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ashle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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