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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시인선 098 | 2026년 1월 23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195 | 166쪽 ISBN 979-11-7490-042-5(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Tel. 02 747 1367, 010 7371 1871 |Fax. 02 747 1877 | E-mail. ssaangin@hanmail.net [시집 소개] 채원 시인의 『안녕을 배우는 일』에서 “안녕”은 인사말이라기보다, 관계가 끝을 향해 갈 때 인간이 치러야 하는 예절의 연습처럼 읽힌다. 이 시집 속 시들의 화자는 사랑을 “지키는 능력”보다 “놓아주는 능력”으로 배운다. 이별을 위한 준비란, 무엇을 더 붙들지 말아야 하는지 배우는 일이고, 사라지고 헤어져야 할 것들에 대한 사랑과 미련은 그 배움의 반대편에서 끝까지 발목을 잡는 감정이다. 채원 시인의 시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발목 잡힘을 도덕적 결함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미련은 사랑의 잔여물이 아니라 사랑이 자기 증명을 요구할 때 생기는 통증이며, 그 통증을 언어로 기록하는 방식 자체가 시집의 핵심 미학을 이룬다. 그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압화」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당신의 다이어리에 말”린다. 꽃을 책 사이에 눌러 보관하듯, 사랑의 대상은 ‘보존’이라는 미명 아래 얇아지고 납작해진다. “아파, 가 나의 일기가 되었어요”라는 한탄은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기록의 단위로 편입되는 순간의 슬픔을 드러낸다. 백과사전과 성경 사이에 눌린 존재는 지식과 신앙의 권위 속에서 숨이 얕아지고, 마침내 “당신 이야기가 기록된 한 장 세포”가 된다. 여기서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아카이브의 폭력에 가깝다. 상대를 “필요 없게” 만들 만큼 완벽히 아는 것, 혹은 완벽히 소유하는 것. 화자가 끝내 묻는 “도대체 나는 무슨 일에 휘말린 건가요”는 연애의 비극을 넘어, 관계가 개인을 문서화하는 방식에 대한 항변처럼 들린다. 이런 문제의식은 「사랑은 이해가 아니다」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는 ‘이해’라는 단어를 앞세우면서도, 그것이 사랑을 가장 쉽게 훼손하는 도구일 수 있음을 비판한다. “이해는 참 쉽습니다, 오해일까요”라는 한 줄이 채원 시인의 시들이 가진 아이러니를 대변한다. 이해가 쉬워지는 순간, 상대는 해석 가능한 대상으로 바뀌고, 해석은 곧 지배로 기울기 때문이다. “나를 알겠다, 는 당신의 말을 따라가다/나를 잃어버렸어요”라는 고백은 연애의 윤리를 친밀함의 정도가 아니라 자기 보존의 가능성으로 재정의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선명해져야 하는데, 많은 관계는 반대로 “나”를 지운 채 “너를 알겠다”는 선언만 남긴다. 이런 선언의 효과는 채원 시인의 언어 감각에서도 드러난다. 「당신當身의 생산」은 섞여 하나가 된 한자어의 덩어리, 즉 “변명설명해명”, “각주첨언주석”을 가마솥에 삶고 장항아리에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랑을 둘러싼 말들의 과잉, 설명의 강박, 정당화의 노동이 끝내 “여보如寶”를 만들어낸다는 역설은, 관계가 감정이 아니라 생산적 공정이 되어버린 현대의 풍경을 비꼬는 듯하다. 이 시집에서 사랑은 나를 완성시키는 구원이 아니라, 나를 복제하고 분열시키며 낯선 ‘나’를 발생시키는 사건이다. 그러니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발생의 결과로써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 된다. 이 시집 『안녕을 배우는 일』은 사랑을 예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만들어내는 문서들, 이를테면 다이어리, 각주, 계약서, 소견서 같은 것들을 통해 사랑의 윤리적 비용을 계산한다. 「헤어질 결심 기간」에서 진단서와 계약서, 통장 같은 사물들이 사랑의 종말을 구체화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제도로 굳어지고, 제도로 굳은 사랑은 끝날 때조차 서류를 남긴다. 그러니 이별의 준비란 울음의 준비가 아니라, 내가 어느 서류에 끼워져 있었는지 확인하고 빠져나오는 일이다. 채원 시인의 시는, 헤어짐을 미화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다. 대신 안녕을 배운다. 떠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남아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이 시집의 시들은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시인의 말] 구구단을 외울 때 나를 암송했던 아이가 까치발로 분꽃 귀고리를 달아주듯 여드름 핀 날을 그러더니 학사모가 상아탑을 파닥거리는 날에도 그렇다고 한다 분내 나는 방송국 브로마이드를 들이밀며 어찌 그럴 수 있냐며, 텐션을 높였더니 그때나 지금이나 푸르다, 한다 사탕수수 같은 말인 줄 알면서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여구如舊하셔서 그럴 것이라 대답했다 학창 시절 꽃밭과 고향의 언덕 웨딩마치를 따라 행진했던 햇살과 들러리도 병영 시절 취사도구처럼 면을 맛들였는데 나를 사랑하시는 이가 그 속에 두신 것을 보면 여상한 사랑을 권유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애정하다>
[저자 약력] 채 원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창작 21』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일보 신앙시 신춘문예, 인천 시민문화대전 시부문 대상, 산림문화공모전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안녕을 배우는 일』이 있다. church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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